의회의 나라 영국

백승종 칼럼

2020-07-11     백승종 객원기자

템즈 강가에 가면 거대한 시계탑 하나가 보인다. 빅벤이다. 95미터 높이의 대형 탑에 시계가 걸려 있다. 탑의 내부에는 5개의 종이 달려 있다. 무게는 무려 13톤이라고 한다. 빅벤은 웨스트민스터 궁궐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 신 고딕풍의 그 궁궐이 곧 영국 의회이다. 의회는 양원제로, 하원과 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우닝가 10번지의 총리관저나 11번지의 재무장관 관저와도 거리상으로 매우 가깝다.

의회 건물, 즉 웨스트민스터 궁궐의 역사는 920여 년 전으로 소급한다. 1097년 이 자리에 웨스트민스터 홀이 조성되었다. 처음에는 국왕의 주거시설이었다. 그러다가 1529년부터 의회의 차지가 되었다. 말하자면 의회가 왕가를 밀어낸 모양이 되었다.

알다시피 13세기부터 의회와 왕실은 권력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힘겨루기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의회는 영국의 진정한 통치자로 성장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행정부가 실제 권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아직도 의회가 정치 권력의 중심이다. 다수당의 대표가 저절로 총리직을 수행한다. 영어로 ‘웨스트민스터’라고 하면 보통은 의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의회는 정치적 타협의 장소이다. 이런 의회가 발전한 덕분에 런던에서는 이렇다 할 유혈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영국인들은 왕의 압제에서도 일찌감치 벗어났고, 가톨릭교회의 지배도 서둘러 청산했다. 인구와 면적만 가지고 간단히 비교해 보면 영국은 한반도와 비슷한 조건이다. 그런데도 유럽의 최강자를 넘어서 세계 경영에 성공하였다. 더구나 아무런 작위도 없는 다수의 향신(젠트리)과 부르주아들이 의회를 장악해서 제국의 모든 것을 결정하였다! 영국 역사는 참으로 독특하다.

나는 시내의 어느 한적한 팝에서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하원 회의 장면을 함께 관찰했다. 영국 의회는 소박하다는 말로는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의원들이 나란히 앉은 장의자는 너무 비좁아 보였다.

의원들은 총리의 연설에도 이따금 소리 내어 비웃었고, 때때로 야유하며 일제히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가 다시 앉기를 되풀이했다.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기 마련인 엄숙하고 질서정연한 의회의 진지한 회의 풍경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물론 우리나라 국회는 영국 의회보다 훨씬 더 소란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유럽 여러 나라보다는 영국의 의회가 시끄럽고 역동적이다.

영국은 수백 년 전부터 의회 중심적인 나라이다. 정치가 행정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독일이나 프랑스와는 사회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모든 문제가 의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런던의 길거리에서 폭력혁명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백만 시민이 운집하는 거센 시위도 볼 수 없다.

의회로 상징되는 영국인은 한편으로 신사적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괴물처럼 보인다. 19세기 초반, 그들은 청나라를 상대로 한 ‘아편전쟁’의 개전을 결정했다. 아편 밀매에 종사하는 무역상들의 로비로 인해,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이 ‘더러운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 전쟁으로 인하여 청나라는 제국주의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했다. 그 바람에 청나라라는 울타리를 믿고 의지했던 조선은 덩달아 무너지고 말았다. 남의 나라의 보호를 기대한다는 것은 한없이 어리석은 일이다.

※출처: 백승종, <<도시로 보는 유럽사>>(사우, 2020)

/백승종(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