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 잃을 게 많을수록 약해진다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부자와 권력자를 부러워하고 숭배하다시피 하지만 가난하고 하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성향은 우리의 도덕감이 타락하게 된 가장 일반적인 원인이다.”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말이다.
“개별 인간은 인류의 방대한 서열 체계에서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는 정확한 등급을 눈동자에 새겨놓고 있다. 그리고 상대의 이런 표식을 읽어 내도록 계속적으로 배운다.” 미국 철학자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의 말이다. 실제로 어떤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첫만남에서 몇 초 안에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판단을 끝낸다.
“부르주아지를 증오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의 말이다. 이 말은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벌어진 부르주아지와 보헤미안의 갈등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보헤미안들은 부르주아지가 대표하는 거의 모든 것을 지독하게 싫어했으며, 그들을 모욕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지위 투쟁과 삶의 방식
이들의 갈등은 사실상 ‘지위 투쟁’이었다. 누가 높은 지위를 얻을 자격이 있고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하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상업적 성공과 공적인 평판에 기초하여 지위를 부여한 반면, 보헤미안들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예술에 관람자나 창조자로서 헌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물론 오늘날 부르주아지의 지위 부여 방식이 주류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위가 중요해진 세상에선 한번 쟁취한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게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영국 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는 [지적인 여성을 위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입문](1928)에서 그런 ‘지위 유지 게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벽돌집에 사는 그 여자(즉, 중산층 여성)는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수많은 사람을 무례하게 대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한다. 물론 가끔은 사회라는 낭떠러지에 돌출된, 자신의 작은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극소수 사람들에게 약간의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소득 불평등은 인간 사회로부터 드넓고 안전하며 비옥한 평원을 빼앗았고, 사람들을 낭떠러지 끝으로 내몰았다. 때문에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그녀의 발 끝에 매달려야 하고, 그 여자는 마음대로 사람들을 발로 차서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게 너무 피곤하지 않은가? 뭔가 다른 삶의 방식은 없을까? 조지 버나드 쇼는 이런 대안적 전략을 제시했다. “속물적인 우리 사회에서 ‘난잡함’(promiscuity)이라는 단어만큼 악의적이고 끔찍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는 없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성적 문란이라는 이 단어의 제한된 용례를 넘어설 수 있다면...사회적 난잡함은 오히려 바람직한 태도의 비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 서로 다른 지위들의 경계가 난잡하게 뒤섞인다면 우리가 지위 경쟁이나 지위 투쟁을 해야 할 이유는 사라지거나 약화되고 말 것이다. 적어도 목숨 걸고 쟁취해야 할 것은 아니다. 지위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행여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까봐 지위의 구별짓기에 더더욱 세심하게 매달리며 불안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위 불안은 매우 파멸적이라 우리 삶의 여기저기를 파괴할 수 있다.” 스위스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이 [불안](2004)에서 한 말이다. 그는 ‘지위 불안(status anxiety)’을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정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사회적 지위도 중요해지고 사회적 평가에 대한 우려도 증가한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서로를 공통된 인간성에 근거해 평등한 타자로 받아들이지만 지위의 차이가 커질수록 상대방을 이리저리 재면서 평가한다. 그러면서 사람의 정체성에서 사회적 지위가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낯선 관계일수록 사회적 지위는 그 사람의 유일한 특징일 수 있다.” 영국 보건학자 리처드 윌킨슨(Richard G. Wilkinson, 1943~)이 [평등이 답이다: 왜 평등한 사회는 늘 바람직한가?](2010)에서 한 말이다.
지위 높을수록 취약해지는 것들
높은 지위에 올라 불안을 전혀 느끼지 않는 유명 인사들은 “지위 경쟁이나 지위 투쟁의 굴레와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라”고 조언하지만, 사람들은 그게 위선이라는 걸 귀신 같이 안다. “그래, 나도 당신처럼 성공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차라리 미국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이자 작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1960~)가 [스킨 인 더 게임: 선택과 책임의 불균형이 가져올 위험한 미래에 대한 경고](2018)에서 한 말에서 작은 위로나마 찾는 게 어떨까 싶다.
탈레브는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약해진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그런 자리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가운데 토론에서 질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며 이렇게 말한다. “특히 나는 예전에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네 명을 사기꾼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그들은 공개적으로 내 언사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들은 왜 유명인사도 아닌 일개 트레이더인 나의 비난에 그토록 민감하게 대응했을까? 더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평판에 더 신경 쓰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은 토론 자리에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패하면 더욱 크게 타격을 입는다고 생각한다.”
이어 탈레브는 “흔히 높은 자리에 오르면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몇몇 한정된 조건하에서만 그렇다”며 이렇게 말한다. “미국 CIA 국장은 미국 최고권력 가운데 한 명이지만, 전 CIA 국장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서(David Petraeus)는 어떤 면에서 보면 트럭 운전사보다도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아내 외의 여자와는 데이트도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는 위치에 있지만, 개와 마찬가지로 강한 목줄에 묶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고위 공직에 몸담은 사람들의 상황은 전부 이렇다.”
중세시대 로마의 신학자이자 사상가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21~1274)는 “원숭이는 더 높이 올라갈수록 엉덩이가 더 많이 드러난다”고 했다. 그렇게 드러나는 엉덩이에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지위가 높을수록 취약해지는 게 많아진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재벌 총수보다는 구멍가게 주인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훨씬 더 많이 누릴 수 있다는 걸 잘 아시지 않는가. 물론 “입에 재갈이 물려도 좋으니 제발 출세 좀 해보자”고 외칠 사람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어차피 출세는 물 건너 간 꿈이라면 그런 ‘정신승리’라도 챙겨서 나쁠 건 없으리라.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