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정당, 강해지는 당파성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2023-01-16     강준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미국은 오늘날 대표적인 정당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초대에서 4대에 이르는 대통령들(조지 워싱턴,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은 모두 처음엔 정당에 강하게 반대했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은 “정당 정치는 하나의 정파가 다른 정파를 억누르는 또 다른 형태의 폭정이다”고 했고, 존 애덤스(John Adams, 1735-1826)는 “정당은 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악이다”고 했다. 미국의 초대 재무부장관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1755 혹은 1757~1804)도 “정당이야말로 민주 정치에 가장 치명적인 질병이다”고 했다.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36)은 무엇보다도 정당으로 인해 “다수건 소수건, 타인의 권리와 공동체 전체의 영속적인 이해에 반하는 공동의 열정이나 이익을 기반으로 시민들이 뭉치게 되는 사태”를 우려했는데, 이게 바로 이들이 정당에 반대한 근본적인 이유였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정당에 대한 충성은 자유롭고 도덕적인 인물이 처할 수 있는 가장 타락한 상태다”, “천국에 갈 수 있지만, 정당과 함께 가야한다면 절대로 천국에 가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제퍼슨과 매디슨은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양대 정당의 창립자가 되었다. 

정당과 신뢰 

약 200년 후 미국의 정당정치는 어떻게 되었는가? 좋은 점도 많았겠지만, 초대에서 4대에 이르는 대통령들의 정당에 대한 우려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게 입증되고 말았다. 정당 간 적개심은 오늘날 미국에서 인종적·종교적 적개심보다 훨씬 강렬한 것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양상은 좀 다를망정 유럽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2010년대 중반에 나온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지수에 따르면, 거의 모든 서양 민주국가에서 정당은 부패에 관한 한 단연 1등으로 판정이 났으니 말이다.

2016년 1월 파리정치대학 정치연구소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 열에 아홉은 정당에 신뢰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정치학자 로맹 슬리틴(Romain Slitine)은 [시민 쿠데타: 우리가 뽑은 대표는 왜 늘 우리를 배신하는가?](2016)에서 “각 정당들은 그들만의 놀라운 철옹성을 쌓는 데 성공했다.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당원은 모든 정파를 다 합해도 최대 36만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프랑스 국민의 0.5퍼센트에 불과한 숫자다. 이런 상황임에도 그들은 모든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후보 선정의 독점권을 쥐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당은 대부분 스스로 밀폐되고 사회로부터 격리된 구조로 축소되었다. 단기적 권력 쟁취 논리에만 집중되어 국가의 미래를 위한 성찰과 사상을 배출해내는 요람으로서 기능은 이미 잃어버렸다. 정당은 지지자들로부터 멀어지고 아주 계급화된 선거전만을 위한 직업적 기계로 변모했다. 그러면서도 정치활동의 주인으로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정당은 출마 후보자를 지명하는 독점권을 행사하며 모든 사회의 운명을 책임지는 프로그램을 결정하고 제도권과 시민들 사이의 주요 통로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속지 않는다.”

정당의 종언이 임박한 것인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나온 연구 결과도 그런 의심을 짙게 만들었다. 미국 정치학자 줄리아 아자리(Julia Azari)는 2016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당파성은 강하지만 정당은 약한 것이다”는 결론을 내렸다. 흥미롭지 않은가? 정당은 약하다 못해 사실상 죽어가고 있는데, 당파성은 날로 강해지고 있다니 말이다. 

정당과 파벌 

언론인 에즈라 클라인(Ezra Klein)은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2020)에서 아자리의 논문을 거론하면서 “이것은 트럼프의 부상,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후보들의 성공, 카리스마 있는 선동가가 정치판을 휘두를 가능성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 가운데 하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떻게 트럼프처럼 비정상적인 후보가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승리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 그렇게 큰 몫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약한 정당과 강성 당원이 답이다. 50년 전 미국이 가졌던 강한 정당 체제에서라면 트럼프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화당 엘리트들은 트럼프를 보며 공포를 느꼈고, 종말론적인 용어까지 써가며 그를 비난했다....그러고 나서 모든 공화당 의원이 하나같이 트럼프를 승인했다. 크루즈는 병적인 거짓말쟁이에게 투표하라고 독려했고, 페리는 보수주의에 암적인 인물에게 투표할 것을 촉구했다. 루비오는 변덕스러운 사람에게 미국의 핵무기 코드를 넘겨주라며 선거운동을 했다.”

이건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자기 정당의 경선 때엔 경쟁자를 절대 대통령이 돼선 안될 인물로 비난하지만, 경선이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경선의 승자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는 코미디가 벌어진다. 그리고 그런 코미디를 하는 게 통이 크고 미래를 내다보는 대인(大人)이라는 식의 찬사까지 쏟아진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 정치학자 V. O. 키 주니어(V. O. Key Jr., 1908~1963)는 “(한때) 남부에서 민주당은 전혀 정당이 아니었고, 공직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러 파벌의 집합체였다”고 했는데, 이 말이야말로 오늘날의 정당에 대한 가장 적확한 설명이 아닐까? 정당은 공직을 얻기 위한 다양한 파벌들의 집합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보는 게 옳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걸 인정하고 들어가면 정당 밖의 제 정신 가진 사람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정당 안팎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행태들에 관한 모든 수수께끼가 쉽게 풀린다. “죽어가는 정당, 강해지는 당파성”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예의 주시해보는 게 좋겠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