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이유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농담과 유머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없다.” 영국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앤서니 애슐리 쿠퍼 셰프츠베리(Anthony Ashley Cooper, 3rd Earl of Shaftesbury, 1671~1713)의 말이다. 그는 적에겐 엄숙한 공격보다 재기발랄한 위트와 조롱의 유머가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은 스프링이 없는 마차와 같다. 길 위의 모든 조약돌마다 삐걱거린다.” 미국의 목사이자 노예폐지운동가였던 헨리 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 1813~1887)의 말이다. “외국어를 사용할 때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재능이 바로 유머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 말이다.
유머 감각
“유머는 성공적인 전술가에게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힘 있는 무기는 풍자와 조롱이기 때문이다. 유머 감각은 자신의 시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며 또한 자신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자신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는 덧없는 순간 동안만 타오르는 조그마한 티끌이다. 유머 감각은 구원을 위한 독단적 교리나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처방이라면 그 어떤 것에라도 완전히 빠져들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미국의 급진적 빈민운동가이자 지역사회 조직가인 사울 알린스키(Saul Alinsky, 1909~1972)의 말이다.
“냉소적으로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진정으로 북돋워 주는 것이 유머다.” 미국의 자기계발 전문가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 1932~2012)가 [성공하는 가족들의 7가지 습관](1997)에서 한 말이다. 그는 유머 감각을 갖기 위해선 그걸 길러야겠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유머와 진지함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은 아주 특별하다. 내 목표도 바로 거기에 있다. 잘난 척하다가는 몽땅 다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미국 가수 폴 사이먼(Paul Simon, 1941~)의 말이다. “유머는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기업 경영에 부작용이 전혀 없는 신경 안정제 역할을 한다.” 미국 기업가 존 챔버스(John Chambers, 1949~)의 말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유머 예찬론은 다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유머가 늘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쓰이는 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박수를 쳐주기 어려운 처세술의 일환으로 쓰이는 유머도 있다. 이중환(1690~1756)의 택리지엔 이런 말이 나온다. “벼슬을 취하는 데 기를 쓰고 피투성이로 싸움하는 버릇은 좀 덜했으나 공석(公席)에서는 일체 모난 말을 하지 않고, 대답하기 어려우면 익살과 웃음으로 얼버무리고…정치를 말할 때는 오직 이기만을 도모하고, 참으로 나라를 근심하고 공공에 봉사하는 사람은 적다.”
이와 관련, 윤태림은 한국인(1993)에서 한국인은 옛날부터 낙천적인 국민으로 웃음을 나타내는 일이 많았으나, 이 웃음에는 모든 사실을 은폐하고 숨기려는 데서 나온 것도 많다고 했다. 유머와 웃음은 당쟁이 한참 심하던 때 하나의 피신·호도책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가하면 정수동, 김선달, 김삿갓 등은 재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신분 때문에 영달을 얻지 못한 불평을 해학을 통하여 특권층을 조롱함으로써 배설하였다고 했다.
유머와 문제해결
그런가하면 “이걸 유머로 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험한 유머도 있다. 미국 정치가이자 발명가인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우스개로 원수를 친구로 만들 수는 없지만, 우스개가 친구를 원수로 만들 수도 있다”고 했는데, 이게 바로 그런 위험한 유머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영국 심리학자 마이클 빌리그(Michael Billig, 1947~)는 “대인관계에서 유머란 이름으로 소통하는 메시지는 대부분 조롱을 포장한 것에 가깝다”고 했는데, 남의 아픈 곳을 건드리면서 조롱하거나 특정 유형의 사람들을 비하하는 걸 유머라고 할 수 있을까? 사회복지학자 김지혜가 [선량한 차별주의자](2019)에서 한 다음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겠다.
“유머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청중의 반응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웃는가?’라는 질문만큼 ‘누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도 중요하다. ‘웃찾사’의 흑인 분장 사건처럼 웃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그 유머는 도태된다.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최소한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렇다. 무표정으로 소심한 반대를 하는 걸로 족할 때도 있겠지만, 분위기가 아무리 싸늘해진다 해도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야 할 때도 있다. 누군가가 유머라는 미명하에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비하하거나 모욕하는 농담을 매우 심하게 할 때엔 그렇게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유머 전문가인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 1934~)는 “유머는 문제해결을 위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문제해결은 커녕 오히려 갈등을 유발하고 격화시키는 말을 유머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