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느티나무
신정일의 '길따라 인생따라'
내 고향을 떠나 낯설고 물선 곳으로 이사를 갔던 그 때가 감수성이 예민했던 열 여섯 살 청소년기였습니다.
지금은 치즈마을로 변한 중화성리 방한 간과 부엌 한 간의 작은 집,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나는 오로지 절해 고도에서 살아가는 로빈손 크루소처럼 책 읽기에만 매달렸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기피 했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할머니가 있는 고향 백운을 가기 위해 아랫마을 금성리를 내려가다 보면 내 눈에 들어차던 느티나무.
얼마나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 가늠할 길이 없는 그 느티나무는 벼락을 맞아 가운데가 뻥 뚫린 채
마치 잘생긴 분재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너무 예쁜 그 모습에 반한 나는 그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그 나무를 바라보는 것으로 나의 절망스런 시절들에 위안처럼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시절이 지나가다가 어느 날 부터 그 나무는 잎들이 시들어 갔고 어느 날인가는 죽고 말았습니다.
동구 밖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그 나무가 시들어 버리다니 내 마음 역시 그때부터 시들어갔고 그 시들음이 다시 소생으로 변하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 부터였습니다.
죽은 느티나무를 내가 갖고 싶다.
꿈꿀 수 없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지고 나는 그 나무를 1982년 초 내가 처음으로 열었던 카페인 '느티'에 가져다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내 지난했던 생애에서 첫 번 째 꿈이 이루어졌던 그 느티나무, 쟝 그르니에가 말한 것처럼.
"항상 꿈을 꾸게나, 꿈은 공짜라네"
나는 그 느티나무에 대한 추억으로 꿈을 꾸었고 그리고 그 꿈 때문에 지금까지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강물에 마음이 홀려 이렇게 우리 산하를 떠도는 것도,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내 어린 날의 가녀린 그 꿈이었던 그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품었던 그 진한 향수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릅니다.
아! 지금도 눈에 선한 임실 치즈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던 그 느티나무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나는 가끔씩 푸르게 서 있던, 아니 그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그 나무를 그리워하고 있으니.
/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