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사님 3선 돕자”...전북도 산하 조직·단체 관권선거 ‘요지경’, 몸통은 내버려 둔 채 깃털만 수사
뉴스 큐레이터 시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간에 더불어민주당 입당원서를 무더기로 유출해 당내 경선을 방해한 혐의 등을 받는 송하진 전 전북도지사의 부인과 전 비서실장 등 측근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적발된 전대미문의 관권선거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노출됐다. 특히 몸통은 비껴가고 변죽만 울리고 만 부실 수사란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 제도의 문제점도 여기에 한몫 가세했다. 다시 사건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전북경찰청은 지난 10월 24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송 전 지사의 부인 오모 씨와 송 전 지사 재임 시절 비서실장 등 측근이었던 고모 전 비서실장, 송모 전 비서실장, 장모 전 비서실장, 한모 전 과장을 비롯해 이 사건에 가담한 전·현직 공무원 12명과 일반인 18명 등 총 30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부하 공무원들 모아 온 명단, 데이터로 정리한 뒤 권리당원화
이들은 특히 부하 공무원 등이 모아 온 명단을 데이터로 정리한 뒤 권리당원화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한 것으로 밝혀졌다. 마치 피라미드식 구조처럼 측근들이 부하에게 명단 모집을 부탁하면 하위 공무원들에게 지시가 내려가는 방식으로 개입해 온 이들은 지방선거 기간 민주당 입당원서를 유출해 당내 경선을 방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가족과 주변 사람, 부하 직원을 동원해 모집한 민주당 입당원서를 전북도청 산하기관인 전라북도자원봉사센터로 유출했다. 입당원서는 개인정보 보호와 경선 등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도당에 전달해야만 한다.
앞서 경찰은 지난 4월 전라북도자원봉사센터를 압수수색해 입당원서 1,000여 장과 1만여 명의 당원 명단이 모인 엑셀파일을 발견했다. 당시 민주당 전북도지사 경선을 앞두고 전북도 산하기관인 자원봉사센터에서 입당원서가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지역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매년 20억원대 도비 지원 자원봉사센터 소속 직원들, 경선 관여 관권선거 주도”
이처럼 전라북도자원봉사센터가 주축이 된 관권선거 의혹 사건의 핵심 혐의자에게 징역형 집행유예가 내려졌다.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노종찬)는 7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 씨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자격 정지 2년을 선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이 매년 20억원대의 도비가 지원되는 자원봉사센터 소속 직원들을 경선운동에 관여시켜 관권선거를 주도했다"며 "공직선거법의 입법취지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지방공무원인 피고인이 조직적, 체계적으로 당원을 대규모로 모집·관리하는 방법으로 공직선거법에서 금지하는 당내 경선운동을 함과 동시에 지방공무원법이 금지하는 정치운동을 했다"고 판시했다.
또 “피고인은 관권선거를 주도했으며 수사과정에서 도망했고, 당원명부가 담긴 저장 매체를 산 중턱에 버리는 등 증거인멸로 보이는 행위를 하는 등 범행 후 정황을 감안할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해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송하진 전 지사가 당내 경선에서 아예 배제되면서 피고인의 활동이 경선 결과에는 영향이 없었던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전 전북도지사 비서실장 등 공무원들 줄줄이 기소...“몸통·핵심은 비껴가” 지적
앞서 검찰은 김씨와 같은 혐의로 송하진 전 전북도지사의 부인과 현 전북자원봉사센터장 등 1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특히 기소된 전·현직 공무원들 중에는 전 도지사 비서실장을 지낸 3명 외에도 전 공보실 및 자원봉사센터 간부 등 송 전 지사 측근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공무원들 사회에선 “이번 사건은 일부 간부 공무원이 관리하던 입당원서가 사법당국에 의해 드러났을 뿐, 실제로는 더 많은 선거 개입 사례들도 있었다”며 “몸통과 핵심은 비껴가고 빙산의 일각만 드러났을 뿐”이라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KBS전주총국이 이 문제를 두 관점에서 심층 보도해 주목을 끌었다. 13일 두 꼭지의 해당 기사에서 관권선거의 실태와 문제점 등을 보도했다.
"우호적 당원 모집…조직 선거 부추기는 경선 제도"
먼저 ‘‘우호적 당원 모집’…조직 선거 부추기는 경선 제도‘란 제목의 기사에서 방송은 “불법 선거 동원에는 자원봉사센터뿐만 아니라 출연기관과 전·현직 공무원, 봉사단체까지 연루돼 조직적으로 당원을 모집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며 “이러한 당원 모집은 당내 경선에서 50% 차지하는 권리당원 투표를 의식했기 때문인데, 민주당 경선이 곧 당선이라는 분위기 속에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또한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부쳐진 14명 가운데 당원 모집과 관련된 피고인은 12명인데 대부분 전·현직 공무원”이라고 밝힌 뒤 “검찰 공소장을 분석한 결과 피고인들을 제외하고도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당원 모집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체육회 소속 간부·회원들도 조직적으로 당원 모집"
이어 기사는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자원봉사센터뿐만 아니라, 전라북도가 직간접적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출연기관과 봉사단체, 그리고 체육회 소속 간부나 회원들도 조직적으로 당원 모집에 나섰고, 공무원 등이 포함된 각종 친목 모임과 일부 공무직 노조원, 청원 경찰 또한 피고인들의 부탁이나 지시를 받고 움직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날 방송에서 전북도 한 출연기관의 관계자는 "서로 잘 아는 사이에 그것을(당원 모집) 거절하기도 그렇고, 거절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한 거라고 봐야한다“고 밝혀 공직사회 내부에 깊숙이 관권선거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시사해 주었다.
특히 ”검찰은 송하진 전 도지사의 민주당 당내 경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우호적인 권리 당원을 확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벌인 범행으로 보고 있다“고 한 기사는 ”1년 이내 여섯 차례 이상 당비를 낸 권리당원 투표가 50%를 차지하는 민주당 경선 제도에서 지난 지방선거 때 민주당 장수군수 경선에서도 여론조사 결과 조작 혐의가 드러나 수십 명이 기소되면서 경선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사님 3선 돕자”…민낯 드러난 조직·관권선거
이날 방송은 또 다른 기사 ’“지사님 3선 돕자”…민낯 드러난 조직 선거‘에서 관권선거의 싵태를 조명했다. 전북도 산하 기관들에서 선거철에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여실히 밝혀주었다.
기사는 “KBS가 공소장을 입수한 결과, 검찰은 송하진 전 지사를 도우려 고위 공직자와 부인 등이 여러 조직을 동원해 계획적으로 꾸민 일로 봤다”며 “지난 4월, 민주당 당원 명부를 모으고 관리하다 적발된 전라북도자원봉사센터에서 이른바 '키맨' 역할을 한 자원봉사센터 간부가 센터장을 지냈던 전 도청 공무원과 당시 도 정책보좌관 등에게 당원 모집을 처음 지시받은 건 선거를 스무 달가량 앞둔 2020년 11월쯤”이라고 전했다.
이어 “'숙제'와 '지사님 볼 면목'이란 표현에 이어 구체적인 모집 일정도 언급됐는데, 할당량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 다른 단체로까지 퍼져나갔다”는 기사는 “전 비서실장과 당시 예산과장 등 측근들도 가족과 지인, 건설사 직원 등을 통해 각자 수백 장의 입당 원서를 모았고, 이에 동원된 한 하위직 공무원은 ’불법적인 일이라 못한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기사는 “송 전 지사의 부인과 수행비서 역시 지난해 6월에서 8월 사이 집중적으로 움직여 친·인척과 퇴직 공무원, 친목단체 등을 중심으로 800명에 가까운 당원을 모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덧붙였다.
선거철 '할당량' 산하 조직에 광범위...봐주기·부실 수사 지적
그러면서 “당초 경찰은 30명을 수사선상에 올렸지만, 검찰은 직위 등을 이용해 범행을 주도한 14명만 기소했고, 지시를 받고 당원 모집에 가담한 14명은 기소유예, 2명은 무혐의 처분했다”면서 “같은 혐의로 앞서 기소된 도청 전 공무원 1명이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가운데 재판부가 다른 피고인들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고 마무리했다.
결국, 민주당 경선이 곧 당선이라는 분위기 속에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몸통은 비껴가고 일부 드러난 공무원 등 주변 인물들만 입건 또는 구속돼 유야무야 넘어가고 말았다.
특히 송하진 전 도지사의 경선을 돕기 위해 전북도 산하 조직이 대대적으로 동원되고 많은 공무원들과 심지어 송 전 지사 부인까지 검찰에 넘겨졌음에도 당사자인 송 전 지사는 참고인 조사 한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봐주기·부실 수사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