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선생과 나

백승종의 역사칼럼

2022-12-13     백승종 객원논설위원
백승종 역사학자

2021년 2월 3일, 나는 그를 만났습니다. 처음은 아니었지요. 글에서 그를 만났고, 글씨로도 이미 그를 자주 만났으니까요. 심지어 <<조선의 아버지들>>이란 책에서는 아버지 추사를 감히 제 붓끝으로 그려보기도 하였고요. 또, <<조선, 아내 열전>>에서는 추사와 부인 예안이씨의 부부 관계를 말하기도 하였어요.

추사 김정희를 저는 60평생에 참 여러 번 만났어요. 어렸을 적에는 할아버님이 들려주신 옛날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었어요. 추사가 제주도로 귀양갈 적에 제 고향 전주를 지나갔는데요, 그때 그에게 따뜻한 잠자리와 정갈한 밥상을 제공한 이가 바로 제 조상님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추사가 선물로 준 글씨가 집안에 많았답니다.

공부를 좀 하고서 알게 된 점은 추사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집안 어른이기도 하고 또 스승이기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놀라운 발견이었어요. 그러나 더욱더 새로운 발견은 추사가 참으로 따뜻한 인간이요, 보기에 따라서는 좀 철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였다는 점이었어요.

그리고는 시간이 더 지났고, 저는 학자로서 추사 김정희를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그가 동아시아적 의미에서 참으로 거목이었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지요. 19세기 조선 선비 중에서 학예로서 동시대 중국(청나라)의 거물들과 자유롭게 사귄 이가 있었다는 점이 가슴 뿌듯한 일이기도 하였고요, 철이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인간적 면모가 실은 그의 학문인 실사구시의 고증학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어 기뻤어요.

아쉬움도 없지는 않았지요. 그러나 누군들 완벽하겠어요. 시대의 한계란 누구나 져야 하는 보편적 문제겠지요. 이제는 추사에게 추사 아닌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에게 제가 아닌 그 이상 또는 그 이하의 무엇을 요구하지도 않으려는 결심과 맞닿은 생각이지요. 보잘 것 없는 한 백면서생이 감히 추사 선생과 나란히 서서 그분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겨울도 때로는 따뜻한 법입니다. 

/백승종 객원논설위원(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