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무지의 세계가 우주라면, 지식의 세계는 전주시(全州市)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2022-12-05     강준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지면서 생각했다. ‘실은 내가 이 사람보다 현명하구나. 우리 둘 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모를텐데도 이 사람은 모르면서도 아는 줄 알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므로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적어도 이 사람보다는 한가지 소소한 면에서는 현명해 보인다. 나는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 469~399 B.C.)의 말이다.

“우리의 지식은 유한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무지는 필연적으로 무한하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칼 포퍼(Karl R. Popper, 1902~1994)의 말이다.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무서운 적은 무지가 아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자신이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미국 역사가 대니얼 부어스틴(Daniel J. Boorstin, 1914~2004)의 말이다. 

“무지의 세계가 우주만큼 넓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세계는 스위스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도시 국가 리히텐슈타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영국 저널리스트 올리버 버크먼(Oliver Burkeman, 1975~)의 말이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주에 아무리 좋은 것이 많이 널려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아는 지식의 세계가 리히텐슈타인만 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암흑세계에 갇혀 사는 셈이다.” 

알고 있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은 유럽의 중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있는 나라로, 면적은 160㎢, 인구는 3만 8천 명밖에 되지 않는 매우 작은 나라다. 전주시(全州市)의 면적이 리히텐슈타인보다 조금 큰 205㎢이니 “무지의 세계가 우주라면, 지식의 세계는 전주시(全州市)”라고 바꿔 말해도 무방하겠다. 

그런데 버크먼은 이 사실을 깨우쳐 준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1932-2021)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럼스펠드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그런 걸까? 그는 2002년 2월 12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들이 있고(알려진 사실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알려진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있으며, 또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들(알려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무슨 말인지 단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다음 번역문을 감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알려진 앎이 있다. 안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알려진 무지가 있다.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무지도 있다.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뜻이다.“

이 발언의 취지는 사실상 1980년대 이래로 환경주의자들이 광범위하게 역설해온 것이었지만, 처음엔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말도 안 되는 말장난이라고 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았다. 미국의 ‘쉬운 영어 운동본부(Plain English Campaign)’는 이 발언에 ‘2003년의 횡설수설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이 말은 탁견(卓見)으로 재평가받으면서 자주 인용되는 명언의 위치에 올랐다. 장하준은 “아무래도 ‘쉬운 영어 운동본부’는 럼즈펠드의 이야기가 인간 합리성이라는 문제를 얼마나 잘 꿰뚫어 보는 말이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평했다. 

무지와 착각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우주는 얼마나 클까?”는 ‘알려진 알려지지 않은 것’이지만, 집단적인 페이스북 열광 같은 것은 ‘알려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미국 증권분석가이자 투자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1960~)는 [블랙 스완](2007)에서 이런 ‘알려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을 ‘블랙 스완(Black Swan)’이라고 불렀다. 

미국 인지과학자 스티븐 슬로먼(Steven Sloman)과 필립 페른백(Philip Fernbach)은 [지식의 착각: 왜 우리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가](2017)에서 “사람들은 놀랍도록 무지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무지하다. 또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이토록 무지한데도 세상의 복잡성에 압도당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알아야 할 것의 극히 일부만 알면서 많이 아는 것처럼 말하고 스스로를 진지한 사람으로 여길까?”

이들이 내놓은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거짓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안다고 여기고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면서도 안다고 믿으며 복잡성을 무시한다. 우리의 의견은 우리의 지식으로 정당화되며 우리의 행동은 정당한 신념을 기반으로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것은 이해의 착각이다.” 

이런 착각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겠지만, 그 나름의 장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슬로먼과 페른백에 따르면, “착각하면 즐거워진다. 많은 사람이 인생의 상당한 시간 동안 일부러 착각 속에 살아간다. 사람들은 허구의 세계를 즐긴다. 공상에 빠져 즐거움을 찾고 창조성을 발휘한다. 착각은 우리가 대안 세계와 목표 그리고 결과를 상상할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창조적인 결과물을 끌어낸다. 또한 시도해볼 생각조차 못할 일에 도전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맞다. 분명히 그런 좋은 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건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예외에 가까운 장점이라는 것도 알아두는 게 좋겠다. 영국 심리학자 토마스 차모로-프레무지크(Tomas Chamorro-Premuzic, 1975~)는 [위험한 자신감: 현실을 왜곡하는 아찔한 습관](2013)에서 최근 연구 결과라며 이런 결론을 내렸다. “무능력한 사람이 자신만만할 확률이 높은 이유는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무지 때문에 무모한 도전을 해 운 좋게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건 수없이 검증된 상식이다. 당신은 어떤 길을 택하겠는가?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