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왜 미국에선 북부에 비해 남부의 살인율이 더 높을까?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사기 쳐서 성공하는 것보다 명예롭게 실패하는 게 낫다.”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Sophocles, 496~406 BC)의 말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명예를 더 좋아한다.” 고대 로마 정치가 쥴리어스 시저(Julius Caesar, 100~44 B.C.)의 말이다. “강한 사람에게 최고의 기념비적 업적은 죽기 전에 명예를 얻는 것이다.” 고대 로마 시인 아우소니우스(Decimus Magnus Ausonius, 310~395)의 말이다.
“명예, 명예, 명예, 난 이 명예를 잃어버렸네! 남은 것이라고는 개나 돼지들에게도 있는 것뿐일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오셀로(Othello)]에 등장하는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명예가 곧 내 인생이고 명예와 인생은 함께 가는 것이다”고 했다. 이에 맞장구를 치듯 영국 작가 조지프 애디슨(Joseph Addison, 1672~1719)은 “불명예스런 상처를 입는 것보다 수 만 번 죽는 게 낫다”고 했다.
프랑스에선 1589~1610년의 21년간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결투로 사망한 남성의 수는 거의 1만 명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 미국 역사가 데이비드 파커(David Parker)는 이렇게 말한다. “결투는 상처받은 명예를 회복하는 데 대단히 효과적인 도구였다. 왜냐면 기꺼이 결투를 감행하는 모습이 다른 귀족들에게는 ‘무결과 신념의 증거’였고, 결투에 응하는 것은 결투의 원인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명예의 소중함
“내 생각에 프랑스인들은 자유나 평등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이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명예뿐이다.”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Louis Napoleon Bonaparte, 1769~1821)가 전쟁터에서 종종 했던 말이다. 그는 “군인은 오직 영광만을 원한다”며 가장 용맹함을 떨친 부대에 메달, 연금, 진급, 토지, 작위 등 각종 포상을 후하게 내렸다. 현재까지도 프랑스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서훈 제도 ‘레지옹 도뇌르’를 처음 제정한 이도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신생국 미국에서도 명예는 소중한 것이었다. 지역적으론 북부보다는 남부에서 더 소중했다. 1960년 인구가 500만 명이던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74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 반면, 인구가 950만 명이던 텍사스 주에서는 824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고향인 텍사스 주를 떠나 매사추세츠 주의 터프츠 대학에 입학했던 미국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Richard Nisbett, 1941~)은 이걸 궁금하게 여겨 연구 주제로 삼았다. 오랜 연구 끝에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미국 남부의 살인률이 높은 이유는 살인을 해서라도 명예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왜 남부엔 그런 문화가 형성된 걸까? 니스벳은 남부인이 “배신에는 신속하고 극단적인 폭력으로 대처한다”는 평판이 주는 이점 때문에 불같이 화를 내거나 신체적 충돌과 처벌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이런 성향은 남부에 정착한 유럽인의 기원과 생계수단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남부에 정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백인이었는데, 이들은 유럽에 있을 때 황야와 산에서 소나 양을 치며 살았고 미국에 와서도 가축을 치며 사는 사람이 많았다. 목축 문화에선 스스로 재산을 지켜야 할 때가 많았는데 이때 무엇보다 유용한 것이 사적인 제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평판이었다.
명예와 방패
반면 북부에 정착한 사람들은 주로 독일인과 네덜란드인이었다. 이들은 고향에서나 미국에서나 농작물을 재배했는데 밀밭은 양떼보다 훔치기가 어렵고 훔쳐봐야 이익도 적었다. 농촌 마을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긴밀히 접촉하기 때문애 국가 혹은 공동체 내부의 비공식적 세력이 통제하기가 쉽고, 따라서 이성적이고 온화하다는 평판이 공격적이라는 평판보다 유용했다. 남부 내부에서도 농작물 재배 지역은 목축업이 주를 이루는 건조한 산악지대에 비해 살인율이 낮았다고 한다.
명예를 중시하는 남부의 문화는 미국의 외교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역사가 데이비드 해킷 피셔(David Hackett Fischer, 1935~)는 “남부 지역은 미국이 벌인 모든 전쟁에 대해, 그것이 무엇에 관한 것이든 누구에 맞선 것이든 상관없이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며 그 이유를 ‘명예와 전사의 윤리’에 대한 남부 문화에서 찾았다.
이런 문화와 관련, 수백년 전 이탈리아 정치가이자 사상가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가 다음과 같은 충고를 남겼다는 게 흥미롭다. “명예를 중시하는 문화의 지도자는 잃을 것도 많고 집단 내외에서 공격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당신을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무시무시한 평판을 쌓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미국 심리학자 마이클 맥컬러프(Michael McCullough, 1969~)가 [복수의 심리학](2008)에서 “명예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할 때 쓰는 일종의 가면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명예를 일종의 방패로 여겼다. 만약 내가 명예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상대방이 인식하고 있다고 믿으면, 그 상대방은 누군가 나에게 해를 입혔을 때 내가 신속하고 가혹하게 보복할 것으로 짐작할 것이다.”
사람들이 명예를 자신에 대해 말할 때 쓰는 일종의 가면이나 신호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잘하는 일이라고 무작정 박수를 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예 명예 감각이 전무한, 즉 후안무치(厚顔無恥)를 자신의 경쟁력으로 삼는 듯한 공인(公人)들이 많아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어떤 목적으로 이용해도 좋으니 제발 자신의 명예를 존중하는 척이라도 해주세요.”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