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무시 제삿밥' 이야기

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91)

2022-11-27     김용근 객원기자

농촌 마을에는 후손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이 죽고나면 '제삿밥'을 부탁한다며 마을에 기증한 '제사답'이 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논을 경작하여 수확한 쌀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거나 쌀을 팔아서 마을 경비 충당에 사용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제삿날에 제삿밥을 올려주며 추모했다. 그런데 지리산에는 '무시영감 고사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지리산의 겨울은 식량보다 땔감이 더 귀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산에서 화목을 준비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도, 가을에 무작정 산에서 나무를 벌채할 수는 없었다. 너나 없이 겨울 땔감을 마련하게 두면, 산림이 황페할 게 뻔했다. 그래서 고을 관청에서는 그해 겨울, 집집마다에서 필요한 양만큼만 땔감 나무를 해서 사용하도록 허가량을 배정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해는 예년보다 더 추워 장작이 부족하여 추위에 고생을 하거나 심지어는 동사를 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러던 중 어느 노인 하나가 가을에 무를 들고 관청에 가서, 올해는 아주 추운 겨울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하니 가정마다 겨울 난방용 땔감 배정량을 예년보다도 더 늘려주어야 한다며 그 이유를 말했다. 

가을에 무 껍질이 두꺼워지면, 그해 겨울은 반드시 매서운 추위가 왔었다는 것을, 그 노인은 경험의 지혜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을의 무 껍질이 두꺼워진다는 것은, 무가 추운 겨울의 동해를 견뎌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옷을 많이 입은 것이었다. 그러니 그해 추운 겨울을 백성들이 잘 날수 있도록 땔감 벌목량을 늘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료들은 관행만 우기면서, 그 노인의 말을 묵살했다. 

그해 겨울은 살인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추위로 고생하거나 동사하기도 했다. 그 이후 고을 사람들은, 가을에 무 껍질이 두꺼우면 그것들을 하나씩 들고 관청으로 몰려갔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관청입구에 쌓아놓고 왔다. 새로 부임한 고을 사또는 그 사연을 듣고, 백성들이 겨울을 잘 날수 있도록 벌목량을 두배로 허가해 주었다. 

그 후로는 지리산에서 추위로 얼어 죽는 사람이 없어졌다. 사람들은 그 노인이 후손 없이 죽자 해마다 '무시(무) 제삿밥'을 올리며 추모했다. 지리산의 무시영감 제사밥은 훗날 무 채를 솥밑에 깔고 쌀을 넣어 해먹는 '무시밥'이 되었다.

"내가 올해 우리동네 무시영감 제사밥 올릴 차례여. 긍개로 무시를 잘키워야 해. 인자 이런 일도 내가 마지막일 것이구만. 누구 헐 사람이 있어야제. 조상 대대로 해 온 일도 인자 끝이랑개." 

20년 전 그 할머니 제사는 누가 지내는지 궁금하다. 공동체 마중물은 사람의 훈짐이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