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 불친절한 사회에서 명성 욕망이 강해진다
강준만의 명언 에세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명성 역시 마찬가지다. 명성을 누리는 만큼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는 “명성과 평온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으며, 네덜란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는 “명성의 큰 단점은 그것을 좇을수록 다른 이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고 했다.
“명성은 뚱뚱한 사람에게 수영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거세한 황소의 방광과 비슷하다. 그것은 바람을 얼마나 불어 넣었고 얼마나 세게 꽉 묶었느냐에 따라 수영하는 사람을 길거나 짧은 시간 동안 떠받쳐 준다. 그러나 결국 공기는 차츰 빠지고 그 사람은 밑으로 가라앉게 되어 있다.” 독일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의 말이다.
“대중이 판단하는 명성과 진정한 명성은 거의 정확하게 반비례한다. 어리석은 대중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종류의 명성은 참된 가치와 정직한 성취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그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중이 동경하는 명성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이 염원할 수 있는 종류의 명성이다.” 미국 작가 헨리 루이스 멩켄(Henry Louis Mencken, 1880~1956)의 말이다.
유명인의 명성
“혼자 있고 싶어요.” 스웨덴 출신의 할리우드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1905-1990)가 늘 입에 달고 살아 유명해진 말이다. 명성이 커질수록 사생활은 쪼그라들기 마련이다. 미국 작가 프랜 레보위츠(Fran Lebowitz, 1950~)는 “가장 좋은 명성은 작가의 명성이다. 좋은 식당의 자리를 확보할 수 있되, 식사를 할 때 누군가가 찾아올 정도는 아니니까”라고 말했지만, 지명도가 높아지면 그마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콜롬비아의 노벨문학상(1982)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árquez, 1927~2014)는 “작가에게 명성은 파괴적이다”며 이렇게 말했다. “명성이 개인적인 삶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명성은 친구들과 같이 있는 시간,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간다. 명성은 사람들을 진짜 세계로부터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 글을 계속 쓰기를 원하는 유명한 작가는 명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야만 한다.”
그렇게 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세계적인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방법은 어떤가. 아인슈타인 가족의 친구 토머스 버키는 “그는 항상 자신의 명성을 익살스럽게 받아들였을 뿐,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나의 장점도 단점도 아닌, 나와는 상관없는 것에서 사람들로부터 과도한 찬사와 숭배를 받아왔다는 것은 정말 운명의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다”고 했고, “내가 이 세상에서 몇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논문 몇 편으로 유명해지다니 정말 알 수가 없다”고도 했다.
아인슈타인의 익살을 몇 가지 감상해보자. “유명해지면서부터 나는 점점 어리석어졌는데, 이는 아주 당연한 현상이다.” “만지는 것이 모두 황금으로 변하는 동화 속의 인물처럼 나의 경우는 모든 것이 신문의 소음이 되어 버린다.” 아인슈타인은 열차에서 직업을 묻는 승객에게 “나는 예술가의 모델이오”라고 답했다는데, 이는 조각과 그림을 위해 끊임없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말이었다.
명성과 욕망
미국 할리우드 영화인 우디 앨런(Woody Allen, 1935~)은 명성에 대해 이런 개그를 남겼다. “나는 작품을 통해서 불멸을 얻기는 싫다. 나는 죽지 않음으로써 불멸을 얻고 싶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기는 싫다. 나는 내 아파트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명성에 초연한 척 하는 건 멋지게 보일지는 몰라도, 대중을 상대로 먹고 사는 사람은 명성이 전혀 없으면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다는 게 문제다. 먹고 사는 문제와는 별도로 명성은 ‘인정 욕구’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스위스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은 “명성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가 하는 문제는 그들이 속한 사회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극소수에게만 존엄과 호의가 주어진다면, 평범한 존재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은 더욱 거세진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셀레브리티 문화’를 콕 집어 부도덕한 젊은이들 탓이라며 비난하는 사람은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셀러브리티 문화의 진짜 원인은 자기도취적인 얄팍함이 아니다. 진짜 이유는 친절함의 부족이다. 모두가 유명해지고 싶어하는 사회는, 근본적으로 (넓은 의미에서) 여러 정치적 이유로 인해 평범한 삶을 살면서는 품위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사회다.”
불친절한 사회일수록 명성 욕망이 강해진다는 이야긴데, 꽤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한 걸음 더 들어가자면,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 명성에 집착한다는 가설도 가능할 것 같다. 가수 마돈나는 “나는 하나님만큼 유명해지기 전까진 만족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녀의 불행했던 과거를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욕심이다.
모두에게 친절한 사회를 만드는 건 무슨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것임에도 왜 그게 그리도 어려운지 모르겠다. 자신보다 높은 곳을 향해선 평등을 외치면서도 자신보다 낮은 곳을 향해선 평등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이중성 때문은 아닐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