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골감 고추장' 이야기

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90)

2022-11-20     김용근 객원기자

24년 전이던 1998년 11월 8일 일요일. 나는 하동의 깊은 산골마을로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지리산에 존재한 조상들로부터 상속되어온 구전 음식 중 그 할머니 집안에 내려오고 있다는 '골감 고추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어느 해 화개장터에서 그 할머니의 골감 고추장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게 된 것이다. 할머니는 팔순 중반을 넘기고 계셨는데도 일상은 젊어 시집살이 때와 같이 건강하다고 하셨다. 다만 마음이 그때보다는 덜 급해서 편하게 사신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여기가 고향이세요?"

"나는 저 비암사골에서 시집왔어라우. 우리 아부지가 거그서 종우를 갖고 화개 재를 넘어댕기먼서 화개장터에서 팔고, 그 때 내 시아부지는 약초를 캐다 화개장터에서 팔고 있었는디, 점심 때 국밥집에서 만나 막걸리 드시다가 서로 사돈하자고 해갖고 내가 이리로 십집오게 됐당개라우. 우리 영감은 평생을 약초만 캐다 팔아묵고 살았는디 삼년전에 돌아가셔부렀어라우."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렇게 깊은 산중 골짜기에는 골바람 땜시로 열매가 잘 안들기도 허지만 후손 냉긴다고 몇개 달린 열매도 영글들 못해. 긍개로 감나무도 골감밲이 안 살아. 동짓날 새알만백이 안된 감이 그나마 가실에 달리는디, 그것도 부지런허지 않으먼 까치 까마구 날달람지 같은 산진승덜 차지가 되야불고, 사람몫은 아예 없어. 긍개로 가실이 되먼 그 골감 반홍시를 따다가 채반지에다 쪼개서 널었다가 빠짝 마르먼 씨가 없씬개로 절구통에다가 팍팍 찧어갔고, 고추장에 섞어서 삭후게 되먼 달짝지근허니 해가 갈수록 참 맛있어.

우리 시어머이가 그랬는디, 산중에 골바람은 낮에는 산에서 마을로 바람이 내리불고 밤에는 마을에서 산으로 바람이 올려분개로 저 골감에 기운이 꽉 차있대. 그래서 골감 고추장은 옛날에 고을 원님이 임금님한테 올려보낸 귀물이었다고 허드랑개. 그래서 골감 나무가 사는 골짜기에서 자라는 것들은 죄다 약 아닌것이 없다고 어른들이 그랬샀어. 근디 지금 사람들은 골감 고추장은 안 맹그라. 손이 너무 많이가고 돈벌이가 안된개로 말이시. 인자 나죽으먼 저 골짜기 골감들도 사람 구경 못헐 것이구만." 

음식과 자연의 중간에 사람이 있다. 사람이 잘났다고 설쳐대도 평생 그 중간일 뿐이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