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되살아나는 '계보·계파 정치', 무엇이 문제?(2)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완패한 더불어민주당이 패배의 책임을 놓고 벌이는 공방과 갈등이 정치 혐오와 냉소를 더욱 부추기는 모양새다. 그러나 두 선거의 패배 책임을 놓고 반성과 성찰은 커녕 반목과 분열로 치닫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선 '친 문재인'(친문) 대 '친 이재명'(친이)계의 갈등으로 번지는 민주당 내부 분열은 계보·계파 정치의 해묵은 구태를 다시 부르고 있다. 전북을 비롯한 호남지역에선 '친 정세균(SK)'계와 '친 이낙연(NY)'계의 세 대결까지 가세해 8월 전당대회와 내년 4월 '전주을' 보궐선거를 앞두고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두 차례에 걸쳐 되살아나는 계보·계파 정치의 실태와 문제점을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SK, 지방선거 기간 곳곳서 후원회장 맡아...'막강 위력' 과시  

정세균 전 총리
정세균 전 총리

전북의 중량급 정치인들 중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정치인으로는 정세균(SK) 전 총리를 들 수 있다.

SK계 모임인 '광화문 포럼'이 양대 선거 이후 '모임 해체'를 선언했지만 전북지역에선 대선 경선 과정에서 형성된 SK 지지세력이 여전히 두텁다. 지금도 막강한 조직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SK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비록 도지사 민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패배했지만 안호영 국회의원(완주·진안·무주·장수)의 후원회장을 직접 맡기도 했다. SK가 지역 정치권의 영향력을 좌우할 만한 위력을 행사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더욱이 현재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SK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안호영 의원 외에도 강기정 광주시장 예비후보, 문대림 제주지사 예비후보, 유창희 전주시장 예비후보, 허석 순천시장 예비후보, 왕해전 구례군수 예비후보, 박혜자 광주시교육감 예비후보, 한태선 천안시장 예비후보 등 다수 예비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SK-NY, 지방선거 후원회장 자리 놓고 보이지 않는 경쟁

서울신문 6월 3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서울신문 6월 3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미스터 스마일'이라고 불리는 SK는 특유의 온화한 성품과 국무총리, 당 대표, 국회의장 등의 경력으로 민주당 내에선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상임고문의 후원회장을 맡아 친이계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고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를 맡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친문계로 보는 시각이 더 우세할 정도로 양쪽 모두에 친분이 두텁다. 정치권에서 인기와 영향력이 여전히 높은 이유다.

여기에 호남지역에선 NY(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영향력과 조직의 힘이 여전히 막강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 전 대표는 이정재 광주시교육감 예비후보, 박시종 광주광산구청장 예비후보, 이원호 남양주시장 예비후보, 권오봉 여수시장 예비후보, 지용호 동대문구청장 예비후보 등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 38명의 후원회장을 맡았던 이 전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도 광주·전남지역을 중심으로 다수의 예비후보 후원회장직을 수락해 세를 과시했다.

'NY-우범기-서창훈-임정엽' 모임 '주목'

전북일보 5월 15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전북일보 5월 15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후원회장을 맡는다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후견인'을 자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로 정치인이나 경제인, 교육인 등이 회장직을 맡아 후원금 모금에 도움을 주는 목적 외에도 '내가 이 사람을 정치적으로 지지한다'는 뜻과 같기 때문에 아무래도 해당 후보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에서 정치적 계보 또는 계파로 분류되곤 한다.

이처럼 전북지역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후보들의 정치 계보는 크게 이재명, SK, NY계로 분류된다. 그러나 가장 많은 후원회장을 맡으며 세를 과시했던 SK의 지지를 대놓고 맡았던 안호영 국회의원과 유창희 전 도의원이 전북도지사와 전주시장 선거에서 각각 패배해 다소 위축된 분위기였음에도 여전히 현역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의 SK계보는 가장 막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반면 친 이재명계로 불리며 실제로 전북도교육감 선거에 나서 후보 경력으로 현수막과 문자메시지 등에 '이재명 경기도지사 정책 싱크탱크', '이재명 후보직속 균형발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기재했다가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윤태 후보는 3명의 후보 중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이재명 바람’은 커녕, 선거 기간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런 가운데 NY계가 슬며시 전북지역에서 주목받는 모양새다. NY가 지난달 13일 민주당 우범기 전주시장 후보 사무실을 찾아 “전주발전의 주역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 후보에게 지지와 격려를 표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5월 15일 전북일보는 관련 기사에서 “이 전 총리는 이날 ‘전주는 지금 안정보다는 파격의 리더십이 필요할 때’라며 우 후보의 속도감 있는 전주대변혁 의지에 공감을 표했다”고 보도해 사실상 선거 전 이 대표가 우 후보를 지지했음을 시사했다. 

전북일보 회장·새전북신문 부사장, 대선 때 'NY' 지지...따가운 '시선' 

미디어오늘 2021년 6월 17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미디어오늘 2021년 6월 17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기사는 “이에 우 후보는 ‘전주는 지금 조조와 같은 강한 추진력이 요구된다’며 전주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의지를 우회적으로 피력, 이 전 총리의 지지에 화답했다”며 “우 후보는 또 ‘전주는 속도감 있는 개발이 필요한데, SOC 중심의 정책을 먼저 추진할 생각이다. 대한방직 터와 종합경기장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러면서 “전주는 지금 재생할 때가 아니라 창생, 즉 새로운 개발을 추진할 때라고 덧붙였다”는 기사는 “이 전 총리의 이날 방문에는 서창훈 전북일보 회장, 임정엽 전 완주군수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전북일보의 이 보도에서 이낙연-우범기-서창훈-임정엽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며 “사주가 이낙연 전 총리를 지지하는 캠프 외곽 조직에 참여하며 맺은 정치적 관계와, 전북일보 대주주 자광의 개발 공약을 전면적으로 수용했던 우범기 당선자, 우범기 당선자와 단일화 한 임정엽 예비후보자의 애매하지만 연결되어있는 네 명의 주요 인사가 이날 한 자리에 모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앞서 <미디어오늘>은 지난해 6월 17일 “대선 앞두고 언론인들 대선 캠프행, 언론 신뢰 무너져”란 제목의 기사에서 “서창훈 전북일보 대표이사 회장은 언론사 사주 신분을 유지한 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선 캠프인 ‘신복지전북포럼’ 상임대표에 이름을 올렸다”며 “박정재 새전북신문 부사장은 공동대표를 맡았다”고 보도해 시선을 모았다.

KBS전주총국 6월 4일 뉴스 화면 캡처
KBS전주총국 6월 4일 뉴스 화면 캡처

“민주당, 정치적 살인행위” 비난 불구 '계보·계파' 암묵적으로 드러내

한편 이러한 계보·계파 정치에 대한 불만이 올 지방선거 전북도지사 선거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다. 특히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민주당 경선후보에 탈락하자 송 지사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정치적 살인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중앙당 공천관리위원으로 참여한 김성주 전북도당위원장(전주병)이 이를 주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았다.

'뉴스1' 4월 17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뉴스1' 4월 17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고성재 전 전북도 비서실장과 지지자들은 지난 4월 17일 송 지사 경선 탈락 후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은 송하진 지사에 대해 정치적 살인행위를 저지른 특정 정치세력들을 즉각 퇴출시켜야 한다”고 밝혀 그 배후에 어떤 정치세력이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더욱이 이날 지지자들은 김성주 민주당 전북도당 위원장을 겨냥해 “전북도당위원장이 이례적으로 공관위원에 참여해 송하진 지사의 컷오프를 강하게 주장해 반영시켰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며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정황적 증거는 있다”고 밝혀 지역 정치권의 계보·계파 정치의 실상을 암묵적으로 드러냈다. 

이 외에도 대선 과정에서 ‘친이재명’을 중심으로 뭉치는 듯했던 전북지역 민주당 내부 계파가 SK계와 NY계 등으로 다시 헤쳐모이는 분위기다. 특히 내년 4월 전주을 보궐선거를 놓고 이러한 계보·계파 정치는 더욱 치열한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벌써부터 거론되는 후보군들 중에는 친이재명계 외에 친SK계와 친NY계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당 공천제 폐지 여론 확산 속 '전주을' 보궐선거 계보·계파 '촉각' 

더불어민주당 로고
더불어민주당 로고

전주을 보궐선거에 출마할 후보군으로는 민주당에서 고종윤 변호사(전 민주당 선대위 조직본부 미래희망단장)·김승수 전주시장·양경숙 국회의원(비례 초선)·유성엽 전 국회의원(전 민생당 공동대표·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이덕춘 변호사(전 민주당 전주을 공동선대위원장)· 이정헌 전 JTBC 앵커(제20대 대선 민주당 이재명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미디어센터장)·임정엽 전 완주군수·최형재 전 민주당 선대위 조직본부 부본부장(전 전주을지역위원장) 등(가나다 순)이 꼽힌다. 

전주을 지역이 보궐선거 지역으로 확정되기까지는 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공천했던 이상직 전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인한 대법원 최종 유죄 판결에 따른 직위 상실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무공천’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야당이 된 민주당 입장에서 호남 의석 1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따라서 아직 드러내놓고 '친SK'계 또는 '친NY'계라고 밝히진 않지만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서서히 색채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에선 정운천 국회의원(비례 재선)과 하종대 6·1지방선거 국민의힘 전북도지사선거 총괄선대위원장(언론인 출신)이 거론된다. 

계보·계파 정치, 선거 브로커와 무관하지 않아...피해, 주민들 몫 

JTV 5월 14일 뉴스 화면 캡처
JTV 5월 14일 뉴스 화면 캡처

그러나 “주민들의 지지를 얻는 것보다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게 작용을 했다”는 따가운 여론이 이번 지방선거 기간 내내 전북지역에서 맴돌았다. 최다 무투표 당선과 최저 투표율의 기형적 형태를 보인 이번 지방선거 이후 정당 무공천제 주장이 강도 높게 제기되는 이유다. 

전주을 보궐선거를 앞두고 또 어떤 정치세력들이 계보·계파를 형성하며 활개를 칠지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북지역 유권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며 선거 분위기를 해쳤던 '선거 브로커'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될 것이 자명하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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