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정치 권력의 치부나 비리 등에 대해 보도하지 않아 뭐가 뭔지 모르도록 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 ‘무보도(無報道)’ 방식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중요사항에 대해 보도하지 않으면 국민은 뭐가 뭔지 알지 못하는 소위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국민의 알 권리는 훼손되고 언론은 직무유기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가 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언론 통제 전략’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김 교수는 무보도야 말로 언론의 직무유기이자 국민의 알 권리를 훼손하는 지름길임을 역설했다. 

이러한 무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보다 비위와 비리로 얼룩진 공직사회 또는 조직을 보호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정의와 공론장의 적이라고 규정 짓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무보도가 전북지역 언론계에 음습하게 자리하고 있다.

기자상·민주언론상 휩쓴 기사 다른 지역언론들 외면...공론화 실패 ‘아쉬움’

전북CBS 노컷뉴스 11월 18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전북CBS 노컷뉴스 11월 18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연말을 맞아 한국기자협회와 전북민주언론시민엽합(전북민언련)으로부터 기자상과 민주언론상을 휩쓴 전북CBS 남승현·송승민 기자의 '전라북도 전 비서실장의 출렁다리 땅‘ 기사는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상을 받은 기사지만 다른 지역언론들이 침묵하며 외면하는 이유는 뭘까? 

전북민언련은 올해의(제9회) 전북민주언론상으로 이 기사를 수상하면서 선정 이유를 “5개월간 연속 보도를 통해 전라북도 최대 권력기관의 고위 공무원이 순창군 부군수를 역임하며 취득해 온 이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그 과정에 전라북도와 순창군, 순창군의회, 지역 정치인의 침묵 속에 각종 특혜와 이권이 특정인에게 돌아간 정황을 전북CBS의 장기간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고 밝혔다.

전북CBS 노컷뉴스 12월 8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그러나 아쉽게도 이 기사의 보도가 5개월 동안 이어졌지만 전북지역 17개 일간지들 지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지상파 방송사들도 전북도와 전북경찰청의 감사·수사결과가 발표될 즈음 피상적인 보도만 이뤄졌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북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전북도 전 비서실장 장 모씨에 대한 부동산 투기와 행정 특혜 의혹의 내사를 마친 뒤 입건하지 않기로 내사 5개월여 만에 발표해 빈축을 샀다. 특히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언론사가 전북민언련과 한국기자협회로부터 '이달의 좋은 기사' 및 '이달의 좋은 기자', '올해의 전북민주언론상'을 연거푸 수상한 것과는 대조적이어서 의구심만 더욱 증폭되고 말았다.

사회적 공론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반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다수의 언론들이 침묵하거나 외면함으로써 도민들의 알 권리가 충족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행정과 사법당국의 뒤에 숨어 있는 많은 언론들이 직무유기를 함으로써 문제 제기된 ’고위 공직자의 투기·특혜 의혹’은 유야무야 되고 만 아쉬운 사례로 남았다.

방송작가 투쟁 외면...전북지노위 노동자성 인정 불구, 불편해하는 언론들 왜?

미디어오늘 12월 10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미디어오늘 12월 10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또 다른 무보도·침묵 사례가 최근 발생했다. 9일 전북지방노동위원회(전북지노위)는 KBS전주총국 방송작가 부당해고 신청에 대한 승소 판정을 했다. 이날 전북지노위에는 아침부터 전국 방송작가유니온과 방송작가전북친구들, 전북지역 12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KBS전주 방송작가 부당해고 구제 및 근로자성 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허울뿐인 계약서가 작가들을 보호해주기는커녕 해고의 명분만 만든, 그동안 수많은 방송작가들이 우려했던 사건이 끝내 벌어졌다”며 “전북지방노동위원회가 프리랜서라는 허울 대신 방송작가의 노동 실질을 제대로 따져 전향적이고 상식적인 판정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앞서 지난달 29일부터 8일까지 KBS전주총국과 전북지방노동위원회 앞에서 'KBS전주를 규탄하고 전북 지노위의 상식적인 판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피켓 시위를 진행, 많은 시민들이 궁금해했다.

그런데 지역언론들은 릴레이 시위부터 이날 전북지노위 기자회견, 승소 판정 결정에 대해서도 눈과 귀를 닫았다. KBS전주총국에서 지난 2015년부터 라디오 작가, 콘텐츠 기획자 등으로 7년 간 일해 온 방송작가가 지난 9월 28일 전북지노위에 자신이 일했던 KBS전주총국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사안이었다. 

9일 전북지방노동위원회 앞에서 열린 방송작가유니온과 전북지역 시민사회들체들의 연대 기자회견 모습. 
9일 전북지방노동위원회 앞에서 열린 방송작가유니온과 전북지역 시민사회들체들의 연대 기자회견 모습. 

이날 오전부터 열린 방송작가유니온 및 지역 시민단체들의 연대 기자회견을 비롯해 전북지노위의 방송작가 부당해고 관련 판결에 대한 예고가 오래 전부터 있었음에도 전북지역 주요 일간지 및 방송사들의 취재·보도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언론의 역할과 사명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성찰하게 한 사례다. 전북지역 언론계의 고질적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낸 이번 사례는 '언론이 국민들이 알아야 할 사안을 보도하지 않으면 국민의 알 권리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언론의 직무유기'라는 지적을 새삼 떠오르게 한다. 

더구나 KBS는 어떤 방송인가. ‘KBS의 주권은 시민과 시청자에 있고, 모든 권력은 시민과 시청자로부터 나온다’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는 공영방송 아니던가. 내부의 문제점은 외면한 채 불편부당하고 정의로운 보도를 할 수 있을까? 

지역언론들, 정의·봉사·정론직필 무시하는 이유는? 

전북지역 언론들은 대부분 ‘정의’, ‘봉사’, ‘정론직필’, ‘도민이 주인’ 등의 사시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자사와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거나 사주 또는 모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의도 봉사도 정론직필도 무시하기 일쑤다.

‘도민이 주인’이 아니라 철저하게 ‘사주가 주인’이기 때문에 무보도와 침묵하는 경우가 잦다. 앞선 사례 외에도 지난해 이스타항공 사태로 많은 근로자들이 길거리에서 장기간 체불임금과 해고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며 책임자 처벌과 정부·여당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할 때도 전북지역 일간지들 중에는 ‘향토기업’을 내세워 근로자들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회사 측 입장만을 전달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무소속)과의 연관성이 끊임없이 제기된 이유다. 이처럼 아무리 중요한 사회적 이슈일지라도 자사와 관련성 있는 사안에 대해 게이트 키핑 과정에서 무시되는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한 언론에 쓴 칼럼에서 “반대편에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건 정치인의 필수 자질이 되고 말았다”고 개탄했지만 반대편에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건 정치인 뿐만 아니라 지역언론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취재하고 보도하는가?"

손석희 전 JTBC '뉴스룸' 앵커 (JTBC 제공)
손석희 전 JTBC '뉴스룸' 앵커 (JTBC 제공)

도민의 알 권리가 아닌 언론사 알 권리가 우선시 되는 한 아무리 ‘우수한 기사’상을 받는다 해도 해당 내용이 다수 언론들의 침묵 속에 공론화가 이뤄지기 어렵다. 이 같은 현상이 전북지역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심히 아쉽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언론인 손석희 씨가 최근 출간한 책 ‘장면들’에 나오는 말로 마무리 지으련다.

“사주 간의 인척 관계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언론매체로서의 JTBC는 삼성 관련 이슈가 나올 때마다 끊임없이 오해받고 공격당할 것이었다”

‘일반의 인식 속에서 삼성과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JTBC라는 매체의 뉴스는 생존할 수 없다고 봤다’는 손석희 씨가 JTBC 보도를 이끌며 삼성이라는 ‘어젠다’에 집요하게 주목했던 이유를 알 수 있게 한 대목이다.

한 방송사의 ‘뉴스 터미네이터’로 불리웠던 인물이 퇴장하면서 던진 말은 ‘국민의 알 권리’를 습속처럼 외치면서도 ‘사주를 위한, 사주에 의한, 사주의 언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역 언론인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그러면서 묻고 또 묻게 한다.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취재하고 보도하는가?" 

/박주현 기자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